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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jpg 

301.jpg 미국의 레이찰스나 스티비 원더, 영국의 비틀즈나 비지스, 일본의 라우드니스나 X-Japan, 한국의 조용필이나 서태지와 같이 모든 나라에는 그사회의 시대를 반영하는 가수나 밴드들이 있다. 또한, 그들이 사회에 젊은 세대에 미친영향력들 또한 정도의 차이는있을지라도 모두가 당시의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미쳤으며, 이들은 각각의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그룹 «키노(кино)» 의 리더이자 보컬인 “빅토르 최” 역시 앞서 말한 이들의 같은 선에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나 “빅토르 최”가 당시 사회에 끼친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빅토르 최”는 단순한 시대의 아이콘일 뿐만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이끌어간 선봉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빅토르 최”라는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아마도 많이없을 것이다. (물론 들어본 사람들 이라면 락음악에 남달리 조예가 깊거나 전공과 관련하여들어본 사람들이 대다수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 또한 한국에서 빅토르 최라는 이름은 가끔은 들어보았으나 단순히 고려인출신의 락가수 정도로 알고 있었으며, 한국이 가지고 있는 “빅토르 최”의 의미와 러시아에서 “빅토르 최”가 가지는 의미는 전혀 달랐음을 고백한다. 빅토르 최는 당시의 서유럽과 북미 지역의 락을 모방하는 수준이었던 구 소련의 락에서 «Спокойная ночь(고요한밤),», «Кукушка (뻐꾸기)», «Пачика сигарет(담배 한보루)», «Группа крови(혈액형)» 등등 단순한 멜로디지만 가볍지 않고 자유지향적인 노래를(그렇기 때문에 반(反) 정부적인) 부르는 키노 자체의 독특한 펑크락을 만들어 내며,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낸다.(빅토르최는 단순히 구 소련 시대의 끝자락즈음에 단순한 가수가 아니며 그의 저항적인 노래를 통하여 많은 젊은 세대들이 변화하고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기폭제가 되었다고할 수 있다.)
당시의 보수(공산당측)진영에서의 그의 음악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 선동적이고, 당시의 진보라 할 수 있는 고르바초프의 정책의 수립에 있어서 “빅토르 최”는 조력자라고 할 수 있었으며, 페레스트로이카(경제 분야의 개방), 글라스노스트(언론, 정보의 개방)을 이끌어내어 결국에는 구 소련의 마침표를 이끌어낸 인물중의 한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보다 이른 28살의 나이에 맞은 죽음에대하여 최가 있던 자리에 아직까지도 많은 추측들이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303.jpg 이제 곧 8월 15일이된다. 한국에서의 8월 15일은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의미 깊은 날이지만 여기에서의 8월 15일은 빅토르 최가 세상과 이별한 러시아에선 춥기만 한 날이며, 빅토르 최를 잊지 못하는 러시아의 세대들은 또 다시 최를 기리며 그의 무덤과 “빅토르 최” 추모의 벽앞에 꽃 한 송이와 담배를 들고 다시 모여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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